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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카가 제안하는 새로운 생각

쿼카와 함께 읽는 책 004.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여성환경연대, 시금치, 2016)

 


 

10p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에 대한 기대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고 있다. 그 행복이 물질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행복을 유예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포스트 개발 시대'의 행복은 자연과 인간 모두의 '삶'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것은 삶의 좌표를 이동하는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167p

과연 생명이 사라지더라도 화폐 가치가 상승했으니 우리는 발전했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화폐 가치로만 측정되는 GDP는 우리의 삶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거기에는 삶의 문화와 다양성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175p

에코페미니즘은 바로 이러한 타자화된 소수들을 '의미 있는 타자(signigicant others)'로서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자연물을 무한한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거두고 인간과 상호관계를 맺고 공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타자로 복원하고자 한다. 이처럼 의미 있는 타자와의 상호 연관성을 인지하여 시각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공감하는 능력이 강조된다.

 

177p

여성과 자연의 관계가 물질을 중심으로 정치경제적·역사적 맥락에서 구성된 관계라고 본다. 아리엘 살레(Ariel Salleh)를 비롯한 이들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에서 행해진 자연 파괴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두 이데올로기는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환경, 자연, 여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동일한 구조라고 본다.

 

185p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를 '치열한 무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규정하면서도, 책을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담론을 만들고 제시하기 위해 내딛는 작은 걸음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음이 불안과 공포로 자리 잡은 이 시대에 우리는 '의미 있는 타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즉 나의 어려움을 통해 다른 소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고, 대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에코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한 소소한 노력의 시작일 수 있다. 바로 그 타자는 나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다름 아닌 나의 한 부분이니 말이다.

 대안적인 삶과 세계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다. 불안과 무력감을 걷어내고 현재 세계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대안적인 사회가 어떠한 곳인지 논의하고 실행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대안'을 선취하며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나가는 '틈새'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주체는 주류 사회에서 타자화되어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196p

근대 자본주의의 생산 노동은 돌봄이나 양육과 같은 재생산의 부담을 지지 않는 남성 노동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남성은 '생산자'로서 당당히 재생산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 여성은 '재생산자'로서 '생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거나, 가사와 양육을 떠맡았으니 열등한 생산자일 수밖에 없는 '이등 생산자'가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재생산'을 배제하고 보이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구성하는 탓이다.

 

210p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결단이다. 이제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적극적으로 모성능력을 길러야 한다.

 

217p

생태적이고 건강하고 평등하고 작고 다양한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222p

마을 만들기 혹은 마을공동체운동을 통해 대안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공통의 가치관이 필요하다.

 두 번째 원칙은 구체적인 일상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다.

 

223p

마지막 원칙은 마을 공동체 활동을 정치적 활동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275p

애초에 예술은 어느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가  일상 속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이를 통해 삶을 지속할 힘을 얻는 살림예술이었다.

 

286p

8시간 일하는 정규직만 일자로 취급해야 할까? 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한 형태의 경제 활동을 제도면에서나 정책 면에서나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87p

많이 벌려면 더 많은 시간을 이해야 하는데, 적게 벌더라도 여유를 갖고 즐기면서 일하겠다는 것이다. 일에 대한 보상이 임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가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 그 결과 조합원들ㅇ ㅣ지역 사회에서 얻는 유·무형의 보상도 일하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어 다섯 명 이상만 모이면 협동조합을 창립할 수 있게 되었다.

 

320p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단일한 개념 틀을 공유한다기보다는 실천 측면에서 열려 있는, 유연한 정치적·윤리적 연대이자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현장을 밑바탕으로 삼아, 이론 영역에서 부단히 생성·발전하는 다양한 이론과 담론의 집합이기도 하다. 나는 서구 에코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전지구적으로 적용되는 보편타당성을 이끌어낼 수는 없으며 그러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은 "적게 소비하기"의 일환으로 e북으로 구입해서 읽었다. 때문에 페이지수가 종이책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첨을 참고바란다. 적게 소비하는 것은 때때로 미니멀리즘이라는 어떤 시류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같은 의미인 것이 맞지만 요즘 소위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각종 SNS를 통해 훔쳐보고 있으노라면 그 전시된 삶은 소비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이지 계속되는 소비의 일환으로 보인다. 특히 이케아나 무인양품을 시초로 하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흐름은 기존의 삶의 방식과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또다른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해하는 적게 소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불필요한 것을 사지 않는다. 여러개의 조잡한 것 대신 하나의 좋은 것을 산다, 가 아니라 내삶에 필요한 물건 자체를 줄이는, 필요한 물건도 필요치 않은 간소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것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현란한 유혹속에서 무언가 더 좋은 것을 애써서 사는 것보다 사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를 불필요로, 소비를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완전히 절단내 버릴 수 있는 강인한 이론과 무기가 필요하다. 단단한 정신으로 무장시켜주고 시류에서 휩쓸리지 않도록 나의 탐욕스러운 자아를 제어하도록 잡아주는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상상하고 그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물론 이를 위한 지속적인 공부를 포함한다)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없을 수도 있는 예시를 하나 들자면, 80년대 사회운동은 하나의 트렌드였다. 굳이 진보적인 이론을 공부하고 담대한 미래를 계획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정치를 이야기하고 민주와 자유를 토론하며 나아가 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옳은 방향이었고, 좋은 일이었지만 제대로 된 비전 없는 행동과 실천이 40년후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진보를 만들었다. 세상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원래 젊을 땐 진보적이고 나이들면 보수적이어지는 거라는 케케묵은 세대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니멀리즘이 또다른 소비라는 유행에 빠지지 않고 초기의 방향성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상상력과 삶에서의 실천이 동시에 가지 않으면 정말로 안 된다.

 

이 책에 있는 모든 이야기에 물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4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무릎을 탁 칠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5년 안에 1억을 모아서 제로웨이스트샵을 차리겠다는 일념으로 고통스러운 일상의 노동을 견뎌나가는 나에게 협동조합을 통해 더 많은 동지를 모으고, 더 빠른 시간에 제로웨이스트샵을 시작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희망의 씨앗이 되었다. 특히 나의 경우엔 아빠가 협동조합에서 30년 정도 일해오고 계시기 때문에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탈핵, 농사, 마을공동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키워드는 내가 오랫동안 염원해 왔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것들도 많았다. 고리핵발전소 옆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고 여전히 핵발전소 옆의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명의 청년이 꿈꾸는 핵발전소 없는 세상은 에너지발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의 사람들이 전기를 기꺼이 지금보다 덜 씀으로써 핵발전의 필요 자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전 사회공동체의 기본적인 윤리적 기준이 올라가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한 꿈일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의 삶에서 그러한 미래를 꿈꾸며 실현해나가지 않으면 영영 불가능한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꿈꾸기와 실현하기를 동시에 이뤄가야하는 어떤,, 고통스럽고도 황홀한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우매우 힘들고 피곤하지만 한편으로 이것만이 나를 살아있고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좀 더 나은 나의 모습과 사회의 내일을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되니까.

 

더불어 이러한 꿈을 응원하고 동참해주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는 많다. 이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가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꺼이 그러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지닐 수 있었던 행운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환경오염으로 죽을지 모르는 다음 세대를 위해, 사라져가는 인간본연의 삶을 되찾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