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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카가 제안하는 새로운 생각

쿼카와 함께 읽는 책 003.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슬로비, 2019)

 


13p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17p

뒤에서 쑥덕이는 말을 들으면 삼겹살 회식에 참석해야만 하는 말단 채식주의자 사원 같은 느낌이 든다.

 

44p

빨리빨리 문화는 최대한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최대한 빠른 소비를 장려하고 최소한의 관계를 맺게 한다. 전날 밤에 시키면 일회용 포장재에 둘둘 싸여 몇 시간 만에 도착하는 새벽 배송을 유통 혁신이라고들 한다.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엔 빨리빨리 물결 위에서 이룩한 나쁜 혁신이다. 사회적 속도 자체를 가속하고 일하는 사람을 지워버린 채 더 많은 물건을 쉽게 사서 더 많은 쓰레기를 버리게 한다. 쇼핑이 언제부터 응급실과 경찰서처럼 야간에 급히 처리할 일이 되었나.

 

47p

근본적으로는 빨리빨리와 효율성에 침식된 우리 사회의 시간을 늦추고 다른 삶의 방식이 가능한 사회를 요구하며 따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과 속도를 원한다. 그리고 그 길은 세상의 어떤 물건도, 어느 누구도 쓰레기로 취급하지 않는 삶에 있다.

 

65p

"당신들은 늙어서 죽겠지. 우리는 기후변화로 죽을 거야. 우리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죽을 거야."

 

120p

충분히 부끄러워해도 된다. 세계적으로 연간 5천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모피 재료로 도살당한다.

 

126p

합성수지 옷 없이 모진 겨울을 어떻게 난단 말인가. (...) 아, 정말 합성섬유는 포기가 안된다. 생명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생각하면 모피보다는 그나마 합성섬유가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녕 선택지가 이것뿐일까? 옷 입는 행위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도 않고 바다에 미세플라스틱을 흩뿌리고 싶지도 않다.

 

134p

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이 곧 쓰레기로 변할 자디잔 소비로 구현되어야 할까. (...) 해결책은 다른 욕망을 갈고 닦는 것. 애초에 '지지 않을' 다른 선택과 취향을 찾는 거라고 생각한다.

 

144p

나는 엄청난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꽤 자주 탄다. 죄책감에 쪼그라들지만 취미가 여행인지라 쉽게 포기가 안 된다.

 소비를 줄이기가 잘 안되면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맥시멈리스트라도 되고, 소비할 땐 대안용품과 사회적기업을 찾자. 처음 그어놓은 선을 변명 삼아 거기 멈추지만 말자.

 

145p

"존, 인생이란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이 선을 대신 그어줄 수는 없어 (...)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것은 같지 않아."

 

161p

생분해는 일정 기간 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는 의미인데, 석유계도 분해 촉진제와 미생물 등 기술을 적용해 생분해가 가능하다. 반면 식물성 플라스틱은 사탕수수와 옥수수 등 바이오 원료를 사용했다는 의미일 뿐 생분해 되지 않는 종류도 있다. 생분해는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분해된다는 점, 식물성은 석유 대신 바이오 원료를 이용해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점에서 친환경 적이나 그린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169p

진정한 대안은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거다. (...) 더 좋은 대안과 근본적인 해결책을 지나쳐 한 번 쓰고 버리는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들면, 에디슨 할아버지가 생분해 기술을 발명한다 해도 플라스틱의 미래는 없다.

 

171p

5R은 거절하기, 줄이기, 재사용, 재활용, 썩히기로 구성된다. (...) 불필요한 사은품, 읽지도 않고 버리는 우편물, 취향이 아닌 선물 등을 거절하면 쓰레기가 줄고 삶은 소박해진다.

 

182P

이처럼 일회용품 대신 여성들이 제 몸을 갈아 넣는 가욋일로만 지구가 지켜진다면 그런 지구를 지켜야만 할 이유가 무엇일까. 정작 환경오염을 저지르고 벌어들인 자본주의의 꿀을 빨아먹는 주체는 여성보다는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


"삼겹살 회식에 참석해야만 하는 말단 채식주의자 사원"은 정확하게 나의 상태다. 회사 2년차에 접어든 나는 여전히 사무실의 막내고, 회식은 보통 고깃집이니까.(고깃집이 아니어도 횟집일 가능성 99%) 물론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내돈주고도 미안하고, 쑥덕이는 소리를 앞뒤로 듣는 것도 나의 처지와 일치한다. 그 모든 상황들에서 나는 그냥 좀더 뻔뻔해지기를 선택했다. 음, 아니 선택했다기보다는 익숙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아지면서 뻔뻔해져버린 걸 수도... 하는 수 없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납득시키는 것만이 방법이다. 그나마 나는 다행인 게 우리 회사 상사분들은 내가 채식하는 것을 최소한 존중해주신다. 그러니까 삼겹살 가게에서 삼겹살 안먹고 밥시켜서 우걱우걱 탄수화물 섭취하는 걸 허허, 커카씨 고생하네! 정도로 넘어가줄 정도의 아량이 있으시단 말씀!

 

이 책을 읽으며 쓰레기의 문제는 단순히 쓰레기와 나의 일상의 문제, 혹은 지구의 환경을 살리고 알바트로스와 바다거북이를 위하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 책의 기본은 연결과 재생에 있었다. 이것은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의 회복과도 연결되고, 망가져가는 공동체와도 연결되며, 여성의 문제와 또한 노동의 문제에 깊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국 쓰레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옹호하고, 어떤 삶을 지향하며,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내포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산과 소비다. 요즘과 같이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추어버린 때에도 회사는 열심히 나가고(바로 우리 회사처럼!) 택배는 더욱 바쁘게 굴러가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우리의 일상이 생명보다 가족보다 그 무엇보다 경제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개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우린 그런 사회에 갇혀 살고 있다. 우리의 하루가, 욕망이, 소비와 모든 사생활과 생각이 그 틀 안에 갇혀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대해 느끼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예컨대 나의 취향은 진짜 나의 취향일까? 인스타그램이랑 정말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검색 엔진 옆에 뜨는 무수한 유혹들이 정말 나의 욕망과 상관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렇게 타인의 욕망을 소비하는 것은 쓰레기뿐 아니라 직장을 선택하고 나의 성정체성을 비롯한 나자신에 대해 정의하는 모든 문제에 똑같이 드러난다. 말 그대로 "선 긋기"다. 내 선은 내가 그어야하는데, 자꾸 누가 그어주니까.. 정말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요? 힘이 듭니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쓰레기 없이 건강하게 나의 소중한 삶을 원하는대로 누리면서 가능한 다른 생명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진장 애쓰고 있고 그 흔적들을 최대한 남기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나의 욕망과 소비는 아직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만들어내고 있긴 하다. 앞으로 더많은 노력과 기록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이 한보한보 나아가는 모습을 공유하고자 한다. 많은 고견 들려주시기를!